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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피아노

20세기의 다양한 우연성 음악과 그 의미

by 해쉬브라운 2024. 3. 12.

우연성음악은 우리에게 조금은 생소할 수 있습니다. 스펀지에서도 소개되었던 존 케이지의 <4분 33초>는 우연성음악에 속합니다. 4분 33초 동안 연주자가 피아노 앞에 앉아 그저 악보만 쳐다보고 악보를 넘기는 액션만 취하는 것을 보며 청중들이 의아했던 작품은 당시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늘은 우연성음악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총렬음악과 비교하면 불확정적이고 우연적인 요소를 음악에 도입하는 경향이 20세기 후반에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음악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는 작곡과정에서 작곡가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우연에 의해 작품을 창작하는 방식입니다. 존 케이지에 의해서 처음 시도된 이런 음악을 불확정성음악 또는 우연성음악이라고 부릅니다. 또 다른 하나의 방향은 악곡의 부분 및 전체 구조를 정하고, 연주한느 과정에서 연주자가 독자적으로 작품의 진행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연주 때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이 방식은 알레아(alea)라고 부릅니다. 알레아는 주사위, 우연 등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차용된 개념입니다. 

 

중국의 고서 <주역>에 심취해 있었던 존 케이지는 변화와 우연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재료의 선택과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우연의 요소를 도입하였습니다. 즉, 악기나 음향 또는 음높이나 강약을 작곡가의 의도에 따라 만들지 않고 동전이나 주사위를 던져 우연적인 요인으로 결정하고, 작품을 연주할 대도 연주의 순서나 방법이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음악을 쓴 것입니다. 이로써 음악은 예측할 수 없는 우연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고정된 작품틀은 이제 존재하지 않고 작품은 연주할 대마다 새로 태어나는 셈입니다. 대표적 작품은 존 케이지의 1951년에 발표된 <Music of Changes>입니다. 여기에서 음고와 지속시간, 음색 등은 주역에서 나온 도표를 활용하고 세 개의 동전을 던져서 결정합니다. 그는 <윌리암 믹스>(1952), <상상의 풍경>(1951) 등에서 우연성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케이지는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던 사람으로, 그는 음악과 미술, 건축학, 동양철학 등을 공부했었습니다. 무용가 겸 안무가인 머스 컨닝햄과의 교류는 그의 예술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로 청중에게 충격을 주었던 케이지는 초기에 12 음기법에 의한 작품을 주로 썼고, 그 후 타악기 앙상블을 위한 작품을, 1940년대는 조작된 피아노를 위한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조작된 피아노란, 피아노줄 사이에 고무, 나사, 금속, 등을 끼워서 피아노의 소리를 변형시킬 수 있게 변질시킨 피아노를 말합니다. 

 

케이지와 함께 활동했던 미국의 작곡가 브라운은 불확정성을 음악에 도입하는 것을 모색했습니다. 그는 조형에술가 칼더의 모빌에 영향을 받고, 아방가르드 화가였던 폴록의 예술에 나타난 통제가 없는 창조적 기능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25페이지>(1953)는 1대에서 25대까지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1명 또는 2명, 또는 그 이상의 연주자가 악보 페이지를 자신이 원하는 순서로 늘어놓고 자유롭게 연주하도록 구상되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총렬음악에 심취했던 슈톡하우젠, 불레즈도 1950년대 중반에 우연의 요소를 음악에 도입했습니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슈톡하우젠의 <피아노 작품 XI>(1956), 불레즈의 <피아노 소나타 3번>(1957)등이 있습니다. 슈톡하우젠의 <피아노 작품>은 한 장의 커다란 악보에 기보 된 19개의 그룹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피아니스트가 19개의 단편 가운데 마음에 드는 한 단편을 연주한 다음에 자신의 눈에 띄는 다른 단편을 선택하여 연주하도록 했습니다. 이 작품의 형식은 연주자에 의해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우벤슈톡-라마티(1919~1994)는 미술에서 받은 영향을 토대로 독자적 알레아음악을 시도했습니다. 원래 화가로 활동했던 그는 그래프기보법을 통해 연주자의 자유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연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이러한 작곡방식은 칼더의 모빌의 영향 아래 더욱 발전했습니다. 칼더는 자신의 조각작품을 천장에 매달거나, 기둥역할을 하는 본체에 연결해 바람, 공기의 움직임 또는 전기를 이용한 동력 등을 통해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 이를 모빌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우벤슈톡-라마티는 음악의 구조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칼더의 모빌처럼 연주자가 매번 다른 흐름과 순서,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진행하는 형식에 의한 작품을 만들었고 이를 모빌레라고 칭했습니다. 그는 바둑판 모양의 기보법을 사용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연주자가 악보를 읽고 연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매번 초연된다는 것, 그 얼마나 좋은 것인가?"라는 하우벤슈톡-라마티의 말처럼, 그의 모빌레 형식은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열린 형식을 보여줍니다. 대표적 작품으로 <리에종>, <셰익스피어를 위한 모빌레>등이 있습니다. 

 

루토스와브스키(1913~1994)는 케이지의 음악을 접하면서 우연성음악에 관심을 보이고 이를 제한된 알레아라는 기법으로 전개했습니다. 이 기법은 작품의 음 하나하나 그리고 형식구조가 모두 고정되어 있지만, 개개의 연주자가 다른 연주자와 함께 연주할 때 마치 혼자 연주하는 듯하나 결과적으로는 각각의 파트가 자유롭게 합성되어 우연적 결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고정성과 우연성, 즉 작곡가에 의한 고정된 작품개념과 해석의 독자성이 합쳐진 그의 독특한 작곡양식은 <현악 4중주>에서 잘 나타납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20세기 중반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음악이라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음악이 만들어져서 연주되었습니다. 음악이란 선율이 아름답고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시대의 음악을 들어보면 대단히 실험적이고 좋아서 자주 듣고 싶은 음악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음악에 철학적인 접근을 더하는 것이 의미적으로 크게 다가왔는지 많은 작곡가가 접해보고 그것을 더 개선하거나 자신의 개성에 맞게 추가 또는 수정하는 작업을 통해 다양한 우연성음악이 남게 되었습니다. 멜로디를 감상하는 것 말고도, 음악을 통해 철학적으로 접근해 감상하는 것 또한 의미 있으니, 새로운 의미를 찾기 위해 감상을 시도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